일·집중
게으른 게 아니라 결정을 너무 많이 했던 것이다
소파에 앉은 지 삼십 분이 지났다.
손에는 리모컨이 있고, 화면에는 볼 만한 것들이 끝없이 흐른다. 위로 넘기고, 아래로 넘기고, 다시 위로. 그중 무엇도 재생 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배는 고픈데 뭘 먹을지 모르겠다. 씻어야 하는데 지금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채로 저녁이 흘러간다.
이상한 일이다. 몸을 심하게 쓴 하루도 아니었는데.
하루를 되짚어보면 대단한 사건은 없다. 그런데 촘촘히 뭔가를 고르긴 했다. 몇 시에 일어날지, 무엇을 입을지, 어떤 길로 갈지. 회신을 지금 보낼지 나중에 보낼지. 이 문장을 이렇게 쓸지 저렇게 쓸지. 점심에 뭘 먹을지. 그 사람에게 뭐라고 답할지.
하나하나는 사소하다. 그래서 셈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은 그걸 다 세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은 무언가를 고를 때마다 조금씩 닳는다. 크기와 상관없이. 저녁이 되면 남은 게 별로 없어서, 그 작은 리모컨 하나가 유난히 무거워진다.
그러니까 지친 건 몸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무언가를 고른 마음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이걸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저녁마다 아무것도 못 하는 나를 두고, 뭐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엔 그렇게 멀쩡했으면서 왜 밤엔 이 모양인가 싶었다.
그런데 아침의 나와 밤의 나는 같은 사람이다. 다만 남아 있는 양이 다를 뿐이다.
연료가 떨어진 차를 두고 성능이 나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재미있는 건, 우리가 저녁에 하는 고민의 대부분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무엇을 볼지, 무엇을 먹을지. 어느 쪽을 골라도 삶은 거의 같은 모양으로 흘러간다.
중요하지 않은데도 힘이 든다. 왜냐하면 고르는 일 자체가 힘든 거지, 무엇을 고르느냐가 힘든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더 그렇다. 목록이 길어지면 고르는 기쁨보다 놓치는 아쉬움이 먼저 자란다. 스무 개 중에 하나를 고르면, 열아홉 개를 포기한 기분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것도 고르지 않는 쪽을 택한다. 넘기고 또 넘기면서.
하지만 저녁을 되찾는 방법이 더 강해지는 것일 필요는 없다.
더 굳게 마음먹는 대신, 고르지 않아도 되는 자리를 몇 개 만들어두는 쪽이 훨씬 수월하다. 의지를 늘리는 것보다 선택지를 줄이는 게 늘 더 쉽다.
순서에도 이유가 있다. 결정은 기운이 있을 때 미리 해두는 게 좋다. 금요일 아침의 나는 금요일 밤의 나보다 여유가 있고, 그때 정해둔 것 하나가 밤의 나를 대신 데려다준다.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짧은 쪽지 같은 것이다.
그리고 남는 것들은 그냥 남겨두어도 된다. 고르지 않은 목록, 정리하지 않은 방, 답하지 않은 메시지. 그것들을 다 처리해야 하루가 끝나는 건 아니다.
오늘도 목록만 넘기다 끝났다면, 그건 하루를 잘못 쓴 게 아니다. 이미 충분히 많이 고른 뒤라서 그런 거다.
그래서 나는 금요일 밤을 나의 넷플릭스 데이로 정해두기로 했다. 누구에게 권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나를 위해서. 그것 하나로 금요일 밤이 완전히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다만 그 밤엔, 고를 일이 하나는 줄어 있을 것이다.
루틴 레시피
기운이 남아 있을 때 미리 골라두는 거예요. 저녁의 나는 그냥 재생만 누르면 돼요.
선택지를 줄이는 게 마음을 다잡는 것보다 훨씬 쉬워요. 뭘 고르든 결과는 비슷하니까요.
담요와 리모컨을 소파에 올려두면, 밤의 나는 앉기만 하면 돼요.
정리하지 않아도 하루는 끝나요. 남겨둔 게 있어도 괜찮은 저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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