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집안일이 다 내 몫처럼 느껴지는 며칠, 아침에 나를 먼저 세기
싱크대에 컵이 두 개 놓여 있다. 어젯밤에 내가 씻어둔 자리에.
그걸 본 순간 아직 세수도 하지 않았는데 하루가 시작된다. 손이 먼저 물을 틀고, 머리는 벌써 세탁기 안과 빨래 건조대까지 다녀온다.
며칠째 그렇다. 수건이 몇 장 남았는지 아는 것도, 다 마른 빨래를 걷어 개는 것도 나뿐인 것 같다. 누가 하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고 크게 다툰 적도 없는데, 마음 한쪽이 자꾸 뻐근하다.
이상한 건 이걸 알아봐 달라고 말하는 게 제일 어렵다는 점이다. 말을 꺼내면 따지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그냥 또 개킨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 서운함은 상대에게 가기 전에 나에게 온다. 나는 왜 이런 걸로 마음이 상하나, 하고.
누가 먼저 알아봐 주기를 기다리는 동안, 아침은 계속 남의 일부터 열린다.
눈을 떠서 제일 먼저 본 것이 그 하루의 순서를 정한다. 어질러진 자리를 먼저 보면 하루는 처리 목록으로 시작되고, 내 몫이 아닌 일까지 내 아침이 된다.
그래서 눈뜨고 몇 분은 집을 둘러보지 않는 쪽에 두었다. 아직 아무것도 보지 않은 눈으로 잠깐 있어보는 것. 빈 시간이 아니라, 아침의 주인을 나에게 돌려두는 시간이다.
그다음 첫 손길을 내 쪽에 쓴다. 커피든 세수든, 순서에서 앞에 있다는 것만으로 어깨가 조금 내려간다.
오늘 하지 않을 집안일을 하나 정해두는 자리도 있다. 남겨둔 자리는 방치가 아니라 표시다. 늘 조용히 사라졌던 일이 처음으로 보이는 형태가 되기도 한다.
정리는 눈에 제일 걸리는 한 곳만 짧게. 전부를 손대면 다시 혼자가 되고, 한 곳이면 마음이 눌리지 않는다.
말은 서운함이 굳기 전에 짧게 나가는 편이 가볍다. 긴 대화를 준비하는 사이 마음이 더 무거워지곤 하니까.
컵 두 개는 오늘도 거기 있을 것이다. 다만 오늘 아침에는 내가 그것보다 먼저였다는 것. 그 순서만 며칠 지켜봐도 아침의 무게는 조금 달라진다.
루틴 레시피
어질러진 자리가 먼저 눈에 들면 하루가 남의 일부터 열려요. 방 안을 살피는 대신 창밖이나 천장 한 곳만 보고 있어도 좋아요.
집안일보다 먼저 나를 챙기는 행동 하나를 둡니다. 순서에서 앞에 있다는 것만으로 어깨가 조금 내려가요.
아침에 한 가지를 골라 그대로 남겨둡니다. 남겨둔 자리는 방치가 아니라 표시예요. 조용히 사라졌던 일이 처음으로 보이는 형태가 되기도 해요.
정리할 자리를 하나만 정하고, 3분이 지나면 멈춰도 괜찮아요. 전부를 손대면 금방 다시 혼자가 되니까요.
“컵은 같이 씻을까” 처럼 짧은 한 문장이면 충분해요. 서운함이 굳기 전에 나가는 말이 더 가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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